MOON SO-HYUN
문소현 개인전 <Hollow Show>
6 Channel video installation _2019
비어있는 풍경, 텅 빈 욕망
문소현의 세 번째 개인전 <Hollow Show>는 아카이빙 바벨에서 개최된다. 2016년에 개관한 아카이빙 바벨은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가상에만 존재하는 공간이다. 한 작가에게 한 층을 할애하여 작가의 개인전을 열고, 일정 기간마다 새롭게 층이 갱신되며 무한히 쌓여 간다. 2019년 현재는 22층에 22명의 작가가 상설 개인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아카이브 바벨의 특별전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고안된 새로운 공간에서 2019년 12월 4일부터 1월 2일까지 열린다. 6개 섹션에서 총 33여 점의 신작을 선보인다.
문소현은 도시화, 산업화로 인해 파편화되고 구조화된 인간의 욕망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초기에는 30cm 상당의 핸드퍼펫을 제작하여 스톱애니메이션 작업을 선보였다. 첫 번째 개인전인 <공원생활>에서 작가는 풍경극을 차용하여 휴식을 위해 인공적으로 조성된 공원에서 발견할 수 있을 법한 일상적인 활동들을 기이하고 낯설게 표현하였다. 이를 통해 사회의 질서와 규율 속에서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사이 원초적인 감정과 근원적인 것에의 추구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질문하였다. 두 번째 개인전인 <낙원으로>는 인형극 대신 장면을 채집하거나 오브제를 가공하여 연출한 영상들로 구성되었다. 작품 제작 방법은 바뀌었지만 작가는 여전히 일상적인 도시 생활 속에 왜곡된 욕망을 폭로한다. 고양아람누리미술관에서 선보인 <불꽃축제>에서 인공의 빛을 향해 달려들었다가 타버리고 마는 벌레와, 인공의 빛으로 둘러싸인 공원에서 행복하게 사진을 찍는 현대인의 유비성은 서늘한 감정을 유발시켰다.
작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물들에서 기이하고 비뚤어진 욕망을 집요하게 찾아내어 보여주기에 능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분재, 액체괴물, 매직샌드, 수석, 잠자는 강아지 인형, 섹스토이와 같이 인간의 욕망을 도시 생활에 ‘적합하게’ 분출할 수 있도록 제작된 오브제 뿐만 아니라 선인장, 스투키, 콩나물과 같이 자연적 조건보다 인공적 조건에서 클 수 있도록 길들여진 오브제까지 작품의 모티프로 삼는다. <낙원으로 – 순한 짐승>에서 일부 선보인 바 있었던 이러한 오브제들 중에는 한 개인이 정성들여 키우거나 수집해야만 하는 것들도 있고,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조잡한 것들도 있다. 핸드퍼펫에게 부여되었던 생명력은 사물에 부여되고, 주술에 걸린 신비한 사물들은 인간의 손을 떠나 홀로 움직인다.
작은 무대에서 펼쳐졌던 인형극은 <낙원으로>와 <불꽃축제>에서 실제 공간으로 이동하고, <Hollow Show>에서 다시 가상공간으로 이동한다. 작가는 ‘아카이브 바벨’이라는 표백된 공간에 작품을 위치시킨다. 인간의 흔적이 세척된 공간은 개인의 관계성을 모두 휘발시킨다. 사이버 공간은 마음만 먹는다면 모든 사회적 관계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킬 수 있고, 때로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장할 수도 있다. 그곳에서 나의 욕망은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때로는 왜곡되기도 한다. 가상의 전시공간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지금 여기의 공간을 삭제하고 개별자로서 가상의 공간에 눈을 고정시키도록 만든다.
다른 한편, 공간은 각각 쇼윈도우, 로비, 응접실, 중정, 갤러리, 볼룸 등으로 구성된다. 현대의 많은 건축물들은 공간을 분할하고, 인간의 다양한 행동을 쪼개고 구분지어 공간에 적합한 행동을 수행하도록 요청한다. 인간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공간이 역으로 인간의 행동을 제한하는 것이다. 구조화된 공간에 각 공간의 성격을 반영한 파편화된 욕망들이 자리한다. 쇼윈도우의 춤추는 분재가 입구에 들어선 관객을 현혹하고 응접실에는 인간의 과시욕을 물화한 오브제들이 배치된다. 중정에는 도시에서 자라기 적합하게 재단된 식물 혹은 미적인 외관 때문에 자연에서 탈락된 오브제들이, 클럽에는 인간의 신체적, 성적 욕망을 대리하는 사물들이, 갤러리에는 밤을 밝히는 인공적인 빛들이 집결한다. 클럽에서는 절단된 신체들이 저마다의 행위를 반복하는데, 이는 총체적 경험의 가능성이 상실된 현대인을 은유하고, 제자리를 맴도는 뱀과 원숭이, 숨 쉬는 듯한 인체모형이 자리한 로비는 우리의 욕망이 끝없이 지연되며 결국 해소되지 못한다는 비극을 암시하는 듯하다.
개인전 <공원생활>의 영상설치가 다양한 군상들과 상황을 보여주기 위하여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을 병렬 배치하여 보여주기 위한 무대로 기능하였듯이 아카이브바벨의 가상공간 역시 일종의 무대로 작동한다. 각 작품들은 가상공간에 설치된 보이는 그대로의 작품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배우이기도 하다. 절로 움직이는 사물들은 인간이 사물에 투영한 감정을 고스란히 반사한다. 욕망의 대상이 욕망의 주체가 된다. 사물의 움직임이라는 해방은 꼼짝 못할 일점투시의 공간 앞에 선 관객의 부동의 신체와 대조된다. 이러한 풍경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 직접적인 촉감, 양육, 식이 욕망, 성적 욕망마저도 평평한 화면 속에서 소비하고야 마는 지금의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시각에 의해 다시 좌절되고 마는 욕망의 미끄러짐은 영상의 영상 외에는 아무 것도 현존하지 않는 이 전시장의 풍경과 같다.
기획/서문. 유은순